몰라도되는상식

스포츠 역사에 남을 사건들

Saimon 2023. 3. 29. 16:51

1. 마이크 타이슨 대 에반더 홀리필드 (1997): 두 선수의 복싱 경기 중 타이슨이 분노에 찬 목소리로 홀리필드의 귀 일부를 물어뜯어 실격 처리되어 많은 비난을 받았습니다.

전 헤비급 복싱 챔피언이었던 마이크 타이슨은 1997년 세계 스포츠 역사상 가장 굴욕적인 경기 중 하나에 연루되었습니다. 에반더 홀리필드와의 경기 도중 타이슨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홀리필드의 귀 일부를 물어뜯어 실격 판정을 받고 광범위한 비난을 받았습니다.

이 사건은 이전 라운드에서 홀리필드가 타이슨에게 헤드버트를 날린 후 경기 3라운드에서 발생했습니다. 격분한 타이슨은 홀리필드의 귀를 물어뜯었고, 홀리필드가 고통에 비명을 지르자 경기는 중단되었습니다. 경기를 계속 진행하려는 심판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타이슨은 홀리필드의 다른 쪽 귀를 깨물었고, 그 결과 타이슨은 즉시 실격 판정을 받았습니다.

이 사건은 복싱 역사상 가장 수치스럽고 폭력적인 순간 중 하나로 널리 알려졌으며 타이슨은 선수 자격 정지 처분을 받고 거액의 벌금을 물어야 했습니다. 경기 후 타이슨은 헤드버트에 대한 분노와 좌절감을 언급하며 자신의 행동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과했습니다.

이 사건은 이미 논란이 많았던 타이슨의 경력과 명성에 흠집을 냈고, 재능은 뛰어나지만 문제가 많은 운동선수라는 이미지를 굳혔습니다. 타이슨의 행동은 팬들과 언론으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으며, 많은 사람들이 타이슨의 복싱 선수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이슨은 사건 이후에도 몇 년 동안 계속해서 복싱 경기에 출전했지만, 링 위에서 폭력적으로 폭발한 행동으로 인해 챔피언으로서의 그의 유산은 영원히 훼손되었습니다.

 
 

2. 토냐 하딩 대 낸시 케리건 (1994): 하딩과 전남편은 동계 올림픽을 앞두고 케리건을 공격할 사람을 고용한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피겨 스케이팅계에 큰 수치심을 안겨주었습니다.

 

1994년 토냐 하딩 대 낸시 케리건 사건은 피겨 스케이팅 역사상 가장 수치스럽고 추악한 순간 중 하나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1994년 동계 올림픽을 앞두고 미국 최고의 피겨 스케이터였던 낸시 케리건은 연습 도중 한 남성이 금속봉으로 무릎을 치는 공격을 받았습니다. 이 공격은 케리건이 부상을 입어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게 하여 다른 미국 피겨 선수인 토냐 하딩의 메달 획득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계획된 것이었습니다.

하딩과 전남편인 제프 길룰리는 나중에 셰인 스탠트라는 청부살인업자를 고용하여 공격 계획에 관여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 사건은 언론의 열광과 대중의 분노를 불러일으켰고 피겨 스케이팅의 명성에 흠집을 내고 스포츠에 큰 수치를 안겨주었습니다.

공격에도 불구하고 케리건은 올림픽에 출전하여 은메달을 획득했고 하딩은 8위에 그쳤습니다. 이 공격과 하딩의 연루를 둘러싼 스캔들로 인해 하딩은 선수 생활이 금지되고 형사 고발을 당했습니다.

이 사건은 수많은 다큐멘터리, 영화, 언론 보도의 소재가 되었으며 스포츠 역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순간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또한 이 사건은 선수들에게 가해지는 압박과 선수들이 승리를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지에 대한 논쟁을 촉발시켰고, 궁극적으로 스포츠 이벤트에 대한 더 많은 조사와 규제로 이어졌습니다.

 

 

 

3. 지네딘 지단 대 마르코 마테라치 (2006): 월드컵 결승전에서 지단은 인종 차별적 발언을 한 마테라치에게 헤드버트를 날렸고, 결국 마테라치는 퇴장당하고 팀은 패배했습니다.

 
 

2006년 월드컵 결승전에서 지네딘 지단과 마르코 마테라치가 벌인 사건은 축구(축구)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순간 중 하나입니다.

경기 도중 이탈리아 수비수인 마테라치는 지단의 가족과 유산을 비하하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에 역대 최고의 축구 선수 중 한 명이자 프랑스 대표팀의 주장이었던 지단은 마테라치의 가슴을 헤드버트로 가격하여 마테라치가 바닥에 쓰러지게 했습니다.

지단은 즉시 레드카드를 받고 경기장에서 퇴장당했고, 그의 선수 생활은 불명예스럽게 끝이 났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접전을 펼치던 경기는 무승부로 끝나고, 결국 이탈리아가 승부차기 끝에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 사건은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고, 특히 중요한 스포츠 경기에서 프로 운동선수의 행동에 대한 논쟁을 촉발시켰습니다. 또한 축구계의 인종차별에 대한 논의와 인종차별에 맞서기 위한 더 큰 노력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지단은 여전히 축구계에서 가장 존경받고 존경받는 인물 중 한 명으로 남아 있으며, 경기장에서의 실력과 업적은 전 세계의 수많은 찬사와 팬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테라치 사건은 지단과 축구계 모두에게 불명예와 굴욕의 순간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4. 디에고 마라도나의 "신의 손"(1986): 잉글랜드와의 월드컵 8강전에서 마라도나는 자신의 손으로 논란의 골을 넣었습니다. 이 장면은 여전히 잉글랜드 팬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중요한 사건이 되고 있습니다.

 

1986년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의 월드컵 8강전에서 디에고 마라도나의 "신의 손" 골은 축구(축구)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순간 중 하나입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축구 선수 중 한 명이자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주장이었던 마라도나는 경기 도중 왼손으로 공을 쳐서 골망을 흔들며 골을 넣었습니다. 핸드볼을 보지 못한 심판이 골을 허용해 영국 팀과 팬들은 매우 실망했습니다.

경기 후 마라도나는 이 골을 "신의 손"이라고 표현한 것으로 유명하며, 이후 이 골은 축구 역사상 가장 상징적이고 논란의 여지가 많은 순간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스포츠에서 부정행위의 윤리와 공정한 플레이를 보장하기 위한 기술 활용의 필요성에 대한 논쟁을 촉발시켰습니다. 또한 1982년 포클랜드 전쟁 이후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 간의 격렬한 라이벌 관계를 부각시키기도 했습니다.

'신의 손' 골을 둘러싼 논란에도 불구하고 마라도나는 같은 경기에서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골 중 하나로 널리 알려진 또 다른 골을 넣었습니다. 1986년 월드컵에서 마라도나는 5골 5도움을 기록하며 아르헨티나의 우승에 기여했고, 마라도나의 축구 전설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했습니다.

'신의 손' 사건은 영국 축구 팬들에게 좌절감과 당혹감을 안겨주었지만, 마라도나에게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축구 선수 중 한 명으로 영원히 기억될 빛나는 대담함의 순간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5. 토니 갈렌토 대 조 루이스 (1939): 술에 많이 취한 갈렌토는 루이스와 굴욕적인 방식으로 싸웠고, 경기 도중 한 때 상대 선수 위에 앉기도 했습니다.

 

1939년 토니 갈렌토와 조 루이스의 경기는 복싱 역사상 가장 기억에 남는 시합 중 하나입니다.

갈렌토는 공격적인 스타일과 수다스러운 말투로 유명한 이탈리아계 미국인 파이터로, 당시 세계 헤비급 챔피언이자 역사상 가장 위대한 복서 중 한 명으로 널리 알려진 루이스를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인 선수로 여겨졌습니다.

뉴욕의 양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이 경기에서 갈렌토는 경기 시작부터 독특한 전술로 루이스를 불안하게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는 루이스를 조롱하며 거친 표정과 제스처를 취했고 한때는 루이스 위에 앉으려는 시도까지 했습니다.

갈렌토의 장난에도 불구하고 루이스는 빠르게 우위를 점하며 강력한 펀치를 연달아 날려 갈렌토를 캔버스에 여러 번 쓰러뜨렸습니다. 하지만 갈렌토는 포기하지 않고 강인한 정신력과 투지로 계속 싸웠습니다.

4라운드에서 루이스는 강력한 라이트 훅을 적중시켜 갈렌토를 매트에 쓰러뜨렸습니다. 갈렌토는 가까스로 일어섰지만 멍한 표정이 역력했고 심판은 경기를 중단하고 루이스에게 테크니컬 넉아웃으로 승리를 안겼습니다.

이 경기는 루이스의 인상적인 경기력뿐만 아니라 갈렌토의 다채로운 개성과 파격적인 격투 스타일로 기억에 남는 경기였습니다. 갈렌토는 복싱계 안팎에서 사랑받는 인물이 되었으며, 유머러스한 농담과 자기 비하적인 유머로 유명했습니다.

비록 루이스에게 패했지만 갈렌토는 수년 동안 계속 경기를 치르며 당대 가장 인기 있고 존경받는 복서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그의 유산은 복싱 스포츠에서 마음가짐, 결단력, 쇼맨십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며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6. 존 매켄로 대 비욘 보그(1981): 매켄로는 윔블던 결승전에서 멘탈이 붕괴되어 여러 차례 폭발하고 관계자에게 폭언을 퍼부었습니다.

1981년 존 매켄로와 비욘 보그의 윔블던 결승전은 테니스 역사상 가장 상징적인 경기 중 하나이며, 그 비하인드 스토리도 흥미진진합니다.

당시 보그는 윔블던 챔피언이자 역대 최고의 테니스 선수 중 한 명으로 널리 알려진 선수였습니다. 반면 매켄로는 코트에서 불같이 화를 내는 것으로 유명한 뻔뻔하고 재능 있는 젊은 선수였습니다.

두 선수는 코트 안팎에서 열띤 경쟁을 펼쳤고, 1981년 윔블던 결승전에서 맞붙은 두 선수의 대결은 대조적인 스타일과 개성의 대결로 여겨졌습니다.

경기 자체는 두 선수 모두 놀라운 기술과 투지를 보여준 고전적인 경기였습니다. 첫 세트는 매켄로가 승리했지만 보그가 다음 두 세트를 따내며 2-1로 앞서 나갔습니다.

 

4세트에서 매켄로가 놀라운 역전극을 펼치며 5번의 매치 포인트를 지켜내 7-6으로 승리하고 5세트와 마지막 세트를 가져갔습니다. 두 선수가 팽팽한 접전을 펼치는 동안 긴장감이 감돌았지만 결국 보그가 1-6, 7-5, 6-3, 6-7, 8-6으로 승리하며 경기를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이 경기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고도의 집중력과 정신력이 돋보이는 경기였습니다. 두 선수 모두 경기력에 대한 엄청난 압박감에 시달렸고, 직면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깊이 파고들어야 했습니다.

경기 이후 몇 년 동안 맥엔로와 보그는 둘 다 라이벌 관계를 회상하며 맥엔로는 보그를 선수로서 존경한다고 말했고 보그는 맥엔로의 재능과 경쟁력을 칭찬했습니다.

1981년 윔블던 결승전은 테니스 역사에서 전설적인 순간으로 남아 있으며, 기술과 결단력, 치열한 경쟁을 보여주며 여러 세대의 선수와 팬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7. 브라질 대 독일 (2014): 월드컵 준결승전에서 브라질은 독일에 7-1로 당황스러운 패배를 당했고, 이는 광범위한 비판과 굴욕으로 이어졌습니다.

 

2014 FIFA 월드컵 준결승전 브라질과 독일 경기에서 독일은 브라질의 1골에 맞서 무려 7골을 넣었습니다.

독일이 득점한 골은 다음과 같습니다:

토마스 뮐러(11분)
미로슬라프 클로제(23분)
토니 크루스(24분)
토니 크루스(26분)
사미 케디라 (29 분)
안드레 슐레 (69 분)
안드레 슐레 (79 분)


독일에게는 역사적인 승리였지만, 그해 월드컵을 개최하던 브라질에게는 참담한 패배였습니다. 이 경기는 축구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결과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으며, 두 팀과 팬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브라질은 경기 90분 오스카가 넣은 단 한 골만 득점했습니다. 후반에 터진 골에도 불구하고 브라질은 이 경기에서 7골을 넣은 독일에게 대패를 당했습니다.

 

 

 

8. 론다 로우지 대 홀리 홈 (2015): 당시 무패였던 로우지는 홈에게 충격적인 역전패를 당했고, 이는 로우지의 커리어와 명성에 큰 타격을 입혔습니다.

론다 로우지 대 홀리 홈은 2015년 11월 15일 호주 멜버른의 에티하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UFC(얼티밋 파이팅 챔피언십) 여성 밴텀급 타이틀 매치로 많은 기대를 모았던 경기였습니다.

경기를 앞두고 론다 로우지는 무패 기록과 특유의 암바 서브미션으로 상대를 빠르게 끝내는 것으로 명성이 자자한 UFC에서 가장 지배적이고 두려운 파이터 중 한 명으로 꼽혔습니다. 반면 홀리 홈은 복싱 세계 챔피언 출신으로 종합격투기로 성공적으로 전향해 인상적인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경기는 로우지가 공격적으로 나와서 홈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노력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홈은 거리를 유지하며 뛰어난 풋워크와 타격으로 로우지를 막아냈습니다. 경기가 진행됨에 따라 홈은 일련의 강력한 펀치와 킥을 날려 로우지에게 눈에 띄게 상처를 입혔습니다.
두 번째 라운드에서 홈은 루시를 매트에 쓰러뜨리는 파괴적인 헤드 킥으로 로우지를 잡았습니다. 이어서 홈은 심판이 경기를 중단시키기 전에 펀치를 연달아 날렸고, 홈은 KO(녹아웃)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당시까지 사실상 무적이라고 여겨졌던 로우지였기에 이 경기 결과는 종합격투기계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 패배는 로우지의 커리어와 개인 생활에도 큰 영향을 미쳤는데, 로우지는 시합을 쉬고 그 후유증으로 우울증과 불안증에 시달렸기 때문입니다.

홀리 홈은 다음 경기에서 미샤 테이트에게 패하기 전까지 한 차례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습니다. 그 이후로 그녀는 UFC 여성 밴텀급 부문에서 최고의 컨텐더로 남아 있습니다.

한편 론다 로우지는 2016년 아만다 누네스에게 또 한 번의 패배를 당하기 전까지 한 번 더 승리를 거두며 격투기에 복귀했습니다. 이후 WWE에서 프로레슬링 선수로 전향한 그녀는 2019년 격투기 선수에서 은퇴했습니다.

 

 

 

9. 세레나 윌리엄스 대 나오미 오사카 (2018): US 오픈 결승전에서 윌리엄스는 심판과 격렬한 언쟁을 벌였고, 그 결과 윌리엄스는 점수를 잃고 결국 경기에서 패했습니다.

세레나 윌리엄스와 나오미 오사카의 2018 US 오픈 테니스 토너먼트 여자 단식 결승전은 논란의 여지가 많은 경기였습니다.

경기는 두 선수 모두 서브를 지키며 시작되었지만 두 번째 게임에서 오사카가 윌리엄스의 서브를 브레이크하며 2-0으로 앞서면서 긴장이 고조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윌리엄스는 자신의 코치인 패트릭 모라토글루의 코칭을 받았다는 이유로 주심으로부터 경고를 받았지만 윌리엄스는 이를 강력히 부인했습니다.

세 번째 게임에서 윌리엄스가 코트에서 라켓을 부수고 두 번째 경고와 1점 페널티를 받으면서 긴장감이 고조되었습니다. 윌리엄스는 카를로스 라모스 심판과 계속해서 언쟁을 벌였고, 자신의 점수를 빼앗아간 라모스를 '도둑'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윌리엄스의 폭발은 게임 페널티로 이어졌고, 오사카는 2세트에서 5-3으로 앞서나갔습니다. 윌리엄스가 다음 게임을 따냈지만 오사카가 서브를 지키며 6-4로 세트를 따내고 경기를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경기 후 많은 해설자와 팬들이 심판의 판정과 윌리엄스의 행동에 의문을 제기하며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일부에서는 심판이 너무 엄격하다고 비판했고, 다른 사람들은 심판의 행동을 옹호하며 윌리엄스의 폭발적인 행동을 비난했습니다.

당시 20살에 불과했던 오사카는 처음에는 논란에 가려졌지만 결국 첫 그랜드슬램 우승을 차지하며 인상적인 경기력을 인정받았습니다. 이후 윌리엄스는 여자 테니스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 되었으며 여러 차례 그랜드 슬램 타이틀을 획득했습니다.

23번의 그랜드 슬램 챔피언인 윌리엄스는 계속해서 높은 수준의 경기를 펼쳤지만 2017년 호주 오픈 이후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테니스와 사회 전반의 성차별과 인종차별 문제에 대해 솔직한 발언을 해왔습니다.

 

 

10. 톰 브래디의 "디플레이트게이트"(2015):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쿼터백인 브래디는 경기 중 축구공에 공기를 빼는 행위를 했다는 혐의를 받아 광범위한 조사와 4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았습니다.


'디플레이트게이트(deflategate)'는 2015년 1월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와 인디애나폴리스 콜츠의 AFC 챔피언십 경기를 둘러싼 논란을 가리킵니다. 패트리어츠는 이 경기에서 45-7로 승리하여 슈퍼볼에 진출했지만, 경기의 우위를 점하기 위해 축구공의 공기를 필요 수준 이하로 줄였다는 비난이 빠르게 퍼졌습니다.

NFL은 이 문제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고, 그 결과 패트리어츠의 쿼터백 톰 브래디가 공기 주입 방식에 대해 "최소한 일반적으로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후 NFL은 브래디에게 4경기 출전 정지 징계를 내리고 패트리어츠에 100만 달러의 벌금과 함께 드래프트 지명권 2장을 박탈했습니다.

브래디와 패트리어츠는 잘못을 강력히 부인했고, 이 논란은 슈퍼볼을 앞두고 주요 뉴스거리가 되었습니다. 결국 브래디는 출전 정지 징계에 대한 항소를 취하하기로 결정하고 2016시즌이 시작될 때 4경기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습니다.

이 사건은 패트리어츠의 명성에 타격을 입혔고, 팀과 브래디의 성공적인 커리어 내내 이어져 온 부정행위에 대한 비난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하지만 브래디는 계속해서 높은 수준의 플레이를 펼치며 여러 차례 슈퍼볼에서 우승하고 역대 최고의 쿼터백 중 한 명으로 입지를 굳혔습니다.